퇴근이 가까워진 시간 한 학생의 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우리 OO이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쓰고 계시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느닷없는 질문으로 그 배경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담임으로서 우리 OO이를 얼마나 알고 신경쓰고 있느냐고..’라는 같은 질문이 되돌아왔습니다. 담임은 학생 모두에게 골고루 관심과 신경을 쓰고 있고 OO이도 마찬가지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질문의 정확한 배경을 알 수가 없으니 일반적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학생들을 돌봄에 있어서 그 학생을 소외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도 그 부모는 계속해서 ‘그러니까 우리 OO에게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얘기네…’라는 반말로 비아냥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사유로 그러느냐는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딸을 담임이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투의 얘기만 반복하였습니다.
바람직한 학교생활을 지도하기 위해 학부모와의 상담은 선생님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학생에게 학교와 가정은 각각 다른 공간이지만 한 곳에서의 생활이 다른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두 곳 모두 복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공동체로서 학생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의 실행과 그에 대한 피드백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학생이 생활하는 두 곳은 공간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지식, 기술, 예절 등을 배우는 것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같은 태도, 같은 행동, 같은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태도와 행동이 일관성이 있어야 그 학생이 가진 정체성을 확립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정에서의 학생에 대한 가르침은 주로 부모가 책임을 지고 학교에서의 그것은 주로 선생님이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두 공간에서 각각 이루어지는 가르침에 대해 학부모와 선생님의 의견 교환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학생의 태도와 행동에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주기 위한 근본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학부모와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상담은 이러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가 누구에 대해 근거없는 예단으로 책임을 추궁하거나 부담을 주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위의 부모는 앞도 뒤도 없이 왜 자신의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책임 추궁만 하였습니다. 그것도 반말에, 기분 나쁜 언사를 섞어가면서 말이죠. 사실(fact)에 의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가진 이해의 배경을 먼저 설명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갖는 이해(물론 오해겠지만)가 무엇인지, 배경이 무엇인지, 그래서 갖게 된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해결책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40여분의 긴 통화에서 무턱대고 자신의 자녀에 왜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것이었을 따름이었습니다.
교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무너져 파편화된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다만 어떤 문제를 인식하면, 그것도 성장기 자녀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분명 그 학부모는 자녀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이해를 하는지 공유하고,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자녀가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갖추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학부모의 이 같은 전화가 누구에게 어떤 혜택을 주었을까요? 자신이 가진 일방적인 나쁜 기분은 좋아졌을까요? 자녀에게 느낀 문제점은 해결이 되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