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기간이지만 밀린 일을 처리하러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몇몇 선생님들 역시 출근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당직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당직 선생님의 역할은 학교시설의 점검, 방문자 응대, 비상 연락망에 의한 연락, 전화 받기, 다음 당직선생님에 대한 인수인계, 안전에 대한 점검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업무를 책임지는 역할입니다. 방학기간이지만 시설측면에서의 안전성의 확보와 학교 행정 측면에서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관련 시설과 사항을 점검하고, 상담 혹은 문의 등의 목적으로 방문 및 전화하는 학생, 학부모, 기타 외부인에 대해 성실히 응답하도록 당직근무를 세우는 것입니다. 모두가 휴식을 원하지만 이 역할은 단절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순번제로 당직을 명하고 그에게 최선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죠.
교무실에 출근해 있던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습니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당연히 당직 선생님이 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도 받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서너 번 울리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당직인지 물었습니다. 모 여선생님이 당직이라고 다른 선생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좀 받으라고 했습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직 선생님의 첫번째 임무 증의 하나가 전화받기라고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그는 나 몰라라는 태도만 보였습니다. 신경이 쓰이는 전화벨이지만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어 이후에 오는 전화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당직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얘기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방학기간에 일부러 출근한 이유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전화를 받다가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곤 조금 있다가 교감 선생님이 학교에 출근했습니다. 또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선생님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당직이 누구냐고. 해당 당직 선생님이 자신이 당직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전화를 좀 받으라고 했습니다. 알았다고 했지만 그 이후 걸려온 모든 전화에 대해 단 한 통화도 받지 않습니다. 다시 교감 선생님이 얘기를 하니 알았다고만 건성으로 얘기하고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직을 맡은 이 선생님이 평소 학생들에게 어떤 태도와 행동을 갖도록 훈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잘못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역할을 인지시키고, 심지어 교감선생님까지 그것에 대한 언급으로 고지를 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학생을 포함한 다른 누구에게 역할과 책임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 선생님에게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배움은 이론이 아닌 체험이고 그 체험은 솔선수범일 때 진정성과 효용성이 커집니다. 학교는 이 배움을 근본 목적으로 조직된 기관입니다. 배움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학교가 아닌 거죠. 그런데 배움을 제공하는 주체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솔선수범이 학교를 학교로 인식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다면 배움은 가식에 불과한 거죠. 그런데 가식을 알려주는 공간은 학교가 아닙니다. 솔선수범하지 않는 선생님을 보고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태도와 행동일터이고 그것 때문에 학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의 태도와 행동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하고 쉬운 자신의 의무마저도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어리다고 나이 탓을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었고 세상물정을 알만한 연령대이고, 당직의 책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오늘 여러 사람이 이를 각성시켜 주었지만 의도적으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