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가 종료되면 한 학기 동안 학생 개개인별로 소위 쫑알이라는 것을 작성하여 학부모에게 보냅니다. 한 한기 동안 학생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학교생황을 했는지 선생님의 입장에서 관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가급적 사실(fact) 중심으로 학생이 보였던 태도와 행동을 통해 어떤 장점이 드러나고, 어떤 부분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담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일한 홍길동이지만 상황에 따라 기대되는 역할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녀일 때, 부모일 때, 조직의 성격에 따른 구성원일 때 우리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맞는 역할을 강요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역할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을 보여야 하는 거죠. 상황에 따라 역할이 바뀌고, 그 바뀐 역할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역할에 맞는 태도나 행동으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태도와 행동이라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 다른 상황과 그 상황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떤 태도와 행동을 하는지 전체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모든 학생들은 가정에서는 아들딸로서의 역할을 가집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주는 일차적인 역할이 아들과 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알고 있는 자녀는 이런 사랑스런 아들과 딸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의 모습인거죠. 자녀가 가진 다양하고 종합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부모의 자녀에 대한 무한 사랑은 자녀가 보인 태도와 행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자녀의 태도와 행동이 가진 본래의 의도나 결과에 관계없이 무한 사랑으로 그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생활은 자녀에게 다른 역할을 요구합니다.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역할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죠. 가정에서 보였던 사랑스런 아들딸의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한 사랑으로 대부분의 태도와 행동들이 이해되고 수용되는 상황이 아닌 환경이 조성됩니다. 따라서 아들딸로서 보였던 태도와 행동과는 다른 태도와 행동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환경 속에서 자신이 취한 그 태도와 행동에 따라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나 위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 경험은 이후 완숙한 인격체로서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학생이면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아들딸이 어떤 태도와 행동을 하는지 부모는 모두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함께 생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이를 관찰하고 그 내용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쫑알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쫑알이가 갖는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가급적 자세히 기록합니다. 가정과는 다른 환경인 학교에서 개개 학생이 했던 태도와 행동을 알려줌으로써 자녀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입니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관심이 없으면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전달한 내용에 대해서도 학부모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학부모로서 바라는 우리자녀의 성공 환경은 사회입니다. 아들딸로서의 역할 수행 보다는 지금 학교와 같은 사회에서의 역할에 따라 이후 성공이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공을 바란다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가장 영향력있는 부모로서 좋은 조언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쫑알이를 보내는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쫑알이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그렇습니다. 그 중요성을 이해하는지는 고사하고 읽는지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학부모로부터 다음과 같은 장문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관심으로 보낸 쫑알이를 읽었다는 반응에 매우 기뻤습니다. 희귀한 사례로 기쁜 나머지 공유합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OO이를 맡겨 놓고도 찾아 뵙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OO이를 많이 이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OO이도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선생님이 좋으면 영어공부를 더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해야지 하는데 잘 먹혀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OO이는 △△이랑 □□ 등 학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중학교 마지막 학년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OO이가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되어서야 부모 마음이나 선생님 마음을 알게 되겠지만 학교다 학원이다 짓눌려 살면서도 소소한 일탈을 일삼으면서 지내는 거 보면 큰 걱정은 안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보이지 않게 선생님이 OO이를 잘 배려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학기가 지나 방학식을 하고 선생님이 보내 주신 쫑알이를 보고 선생님께 고맙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잡문^^을 보내오니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고 무더운 방학기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건강에도 유의하시구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