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원어민 영어선생님이 있습니다.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배치된 것입니다. 언어는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입니다. 더불어 단순히 해당 외국어를 익숙하게 쓸 수 있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를 배우는데도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입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곧 그 나라의 해당 문화를 배우는 것이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원어민 영어선생님의 학교 배치는 적절한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영어 교육적인 차원은 물론 영어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어민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화인 우리나라를 알게 되어 인생의 경험을 넓히고, 그 넓어진 경험은 이후 우리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어민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 원어민이 주의하여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도 학생의 신분에 더해 우리문화를 알리는 한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죠.
원어민 선생님과 예정되었던 소위 co-teaching시간을 갑자기 변경할 사유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특정 학급에 왔던 원어민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은 당해 내용을 이해하고 해당 교실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약 오 분 후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다시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남학생 한 명과 더불어 말이죠.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물어 본 즉 이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교무실로 돌아가던 중 복도에 서있던 해당 남학생을 발견했습니다. 당연히 해당 학생에게 수업시간이 지났는데 왜 수업에 안 들어가고 있느냐 했더니 갑자기 선생님에게 ‘F*** Y**’라고 영어 욕을 했습니다. 느닷없는 욕설에 황당한 해당 원어민 선생님이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한 것이냐고. 그랬더니 해당 학생은 역시 똑같은 욕설을 했습니다. 황당함을 넘어 화가 난 원어민 선생님은 그 학생을 데리고 저에게 와서 그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당황하고 화가 난 상황을 영어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과목을 담당하는 저에게 온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학생에게 원어민 선생님에게 욕설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지 않고 씩씩대고 있었습니다. 재차 물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 사이 원어민 선생님은 들었던 욕설에 더해 그 학생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잘했다는 듯한 모습에 더 화가 난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학생에게 지금이라도 원어민 선생님에게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학생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자신도 매우 화가 난 상태에서 그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기 때문에 그 선생님이 잘못이라는 얘기만 했습니다. 그 전에 왜 화났느냐는 질문에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꾸중을 들어 화가 나 있었다고 했습니다. 화가 난 차에 원어민 선생님이 자신의 기분도 모르고 수업에 들어가라고 해서 분노가 그 선생님에게 분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초 화의 원인이 원어민 선생님이 아니었음에도 원어민 선생님에게 욕설을 한 심각한 상황에 대해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원어민 선생님이 느꼈을 감정을 언급했습니다. 재차 사과하면 당해 선생님에게 잘 얘기하겠다고 했지만 사과하지 않겠다고 씩씩댔습니다. 상황이 종료되지 않을 것 같아 일단 교무실로 내려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은 화가 난 상태로 돌아갔고요. 수업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업 후 교무실에서 그 학생을 다시 보았습니다. 여전히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잘못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잘못이 없다고 했습니다. 원어민도 분명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에게 욕설을 한 사실, 그것도 그런 황당한 욕설을 들을 만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벌어진 일방적인 욕설은 학칙에 의해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해당 선생님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면 정상을 참작하려 했습니다. 백번 양보하여 감정을 자제할 정도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시기의 갑작스런 충동으로 이해를 해 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서 물어 보아도 전혀 잘못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학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잘못이 과연 학교만의 책임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교는 학생의 품성과 인격에 대해서는 개인에 대해 차별적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함께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예절과 그것을 의도적으로 벗어났을 때 느껴야 하는 회한과 실수를 깨닫도록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르칩니다. 따라서 이런 잘못에도 인정하지 않는 근본의 문제는 학교 외에서 받은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요? 누가 이런 가르침을 주어여 할까요? 이 학생에게 학칙에 따라 조치를 한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잘못을 알까요? 그리고 그런 확고한 생각으로 나중에 이 사회를 나가면 성숙한 시민이 될까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잘 가르쳤다는 뿌듯함이 들까요?
더불어 황당함을 당하고, 그 황당한 잘못에도 인정하지 않은 당당한 모습의 학생을 보고, 그런 학생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원어민 선생님은 우리 학교를, 우리 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