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그들이 하는 어떤 말들은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장기 학생들입니다. 무엇인가를 드러냈을 때 그것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걱정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래집단에의 귀속과 자리매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당연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튼 이들은 여간 해서는 개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듣기 어려운 주제는 부모와의 솔직한 관계입니다. 학생시절 가장 중요한 이슈지만 그 솔직한 내막을 가장 듣기 어렵습니다. 물론 질문을 하면 대답은 합니다. 그런데 그 대답들이 대부분 피상적으로 들립니다.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죠. 깊게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려고 하는 듯 서둘러 봉합하거나 별문제 없다는 대답으로 넘어갑니다.
가정사에 대한 얘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관계가 아닌 상황에 대한 정리가 안됐기 때문이 아닐까 분석해 봅니다. 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나 사회적 독립을 생각하는 연령이 되고, 또래집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 동안 맺어왔던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깊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이전과 다른 성향이 가져다 준 거리감으로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혼란 혹은 혼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혼란 혹은 혼돈으로 스스로 정리가 안되고 거기에 이미 말한 것처럼 그것이 가져다 줄 반응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으니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는거죠.
암튼 가정사는 그들과의 면담에서 가장 끄집어내기 어려운 이슈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이죠. 그럼에도 몇몇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이 자신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절대 ‘욱’하고 성질을 내는 사람이 안되겠다고 매일 다짐하고 다짐한다’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아빠가 너무 쉽게 ‘욱’하고, 그 욱한 성질을 자신에게 여과없이 토해내서 그것이 너무 싫다’고 말이죠.
이 애기의 주인공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했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밝은 모습 배경에는 암울한 환경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는 예외로 생각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밝고 명랑하게 대해왔기 때문에 그 어떤 굴곡도 없을 것이라 예단했던거죠. 그런데 그는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한 행동지침으로 그 생각을 다짐으로 강화시켜왔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그것이 커다란 상처이자 아픔으로 깊게 침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아빠도 이 자녀를 얻었을 때 이런 모습으로 각인되는 것은 상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이 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면교사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자녀의 상처를 언급하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자녀의 관점이라고 오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태어난 성질이 그 모양이나 어떻겠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와의 교감으로 성장하고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가 바라는 미래 성공의 가장 근본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가진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녀에게 배설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설의 대상으로서 자녀는 어떻게 될까요? 누구나 부모가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격언을 이런 상황에서도 상기하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