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는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성장기의 학생들은 아직 독립적인 주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도편달을 하는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교육에 학부모의 관심과 참여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학교에서의 생활보다 시간적이나 정도적이나 부모의 역할이 성장기 학생들에게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학부모와 학생에 대한 교육적인 차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그런데 보통과 다른 학부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생의 아버지로 학교에서는 이미 유명한 사람입니다. 해당 자녀의 담임으로 여자 선생님이 되면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구애됨이 없고, 내용도 학생의 교육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전화를 하자마자 무턱대고 왜 자신의 자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느냐는 근거도 사례도 없는 책임 추궁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육과 무관한 이상한 주제들로 중언부언하며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들로 시간을 끕니다. 항상 같은 내용으로 밤이고 새벽이고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말이죠. 이미 1학년과 2학년 담임을 맡았던 여선생님들은 이 학부모에 대해 몸서리를 칠 정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학기 초에 이 학부모에게서 전화왔을 때 이런 배경을 몰라 친절하게 전화 응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학생 생활과 관련없는 얘기로 시간을 끌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요한 이슈가 있으면 학교를 방문하라고 해도 오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무 때나 전화로 이상한 얘기들로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생과 관련한 상담을 해당 학생의 어머니로 바꾸려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배경을 설명하고 향후 학생에 대한 상담은 어머니하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해당 어머니도 수긍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방문하여 몇 차례 상담도 하고 전화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해당 아버지는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전화를 받는 대신 어머니와 연락을 해보면 특별한 이슈도 없었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얘기에 의한 학생의 아버지가 너무나 무섭게 애들 다룬다는 것이었고 자신도 남편의 그런 행동을 어떻게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의 아버지가 교육청에 신고하였다는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고의적으로 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교감선생님이 배경을 물어 보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드렸고, 1학년과 2학년 선생님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교감선생님께 이 특별한 학부모는 담임으로서 응대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오면 교감선생님이 직접 상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 차례 연락이 와서 실제로 교감선생님이 응대를 하였습니다. 교감선생님도 같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체험으로 실질적인 이해를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학생 어머니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해당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남편이 무섭게 자신을 닦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슈도 없고, 배경도 다 알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다 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이 무섭게 강요하니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의 생활에 대해서는 어머니하고 하겠다고 아버지와는 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또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협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자신의 가정 내의 불화를 왜 선생님에게 전가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담임선생님이 감수해야 할까요? 학부모의 희롱적인 전화를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요? 개인 생활은 없어야 하는 것일까요? 학부모의 가정 불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무차별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대체 선생님의 교권은 고사하고 인격은 철저히 무시돼도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상황이 학생의 학교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학생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분명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루어져 합니다. 목적에 맞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군가의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거나, 누군가의 비정상적인 도착적 생활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학생은 해당 학부모의 이러한 행동도 보고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