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비용이 사교육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합니다. 특히 사교육비 중에서 영어에 들이는 사교육비가 가장 많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타개한답시고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합니다. 우선 금년도 수능시험에서 영어시험을 쉽게 출제했습니다. 시험이 가진 본연의 목적인 변별력이 떨어져 수능생과 그 가족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 혼란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비용은 영어 사교육 시장에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8학년도부터 수능 영어시험을 절대평가로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가진 본래의 변별력을 영어시험에서는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습니다. 그러면 수능은 어떻게 될까요? 수능생들의 실력을 변별하기 위한 목적이 수능시험인데 영어에서 이를 포기한다면 다른 과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시민 833명을 대상으로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이 수학에 미칠 영향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것입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9%가 소위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9명이 수학이나 국어 등 다른 영역으로 사교육이 옮겨가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우려한다는 얘기입니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돼 변별력이 떨어지면 대입에서 수학의 비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당연히 '수학 공부로 인한 고통과 사교육비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우려고 예상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학부모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을 일생의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 한 과목의 변별력을 없앤다고 사교육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우려이자 예상입니다.
하지만 이 보다도 더 큰 문제는 영어를 보는 정부의 시각입니다. 정부는 영어를 지나치게 사교육 관점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영어를 쉽게 출제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영어는 좋든 싫든 세계언어입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는 글로벌화 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글로벌 환경에서 영어로 경쟁해야 된다는 것이죠. 영어로 무장한 글로벌 인재 육성이 교육 정책의 우선이 되어야 하고 그런 관점이 영어 정책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전세계 과학학술 분야와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논문들 대부분이 영어로 간행됩니다. 또한 인터넷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외국사람들을 만나 일상적인 대화 이상을 할 수준의 영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교육을 없앤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벌 세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우리 아이들의 영어 수준을 하향 평준화를 시키는 정책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래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선 어차피 높은 수준의 영어가 필요함에도 말이죠. 이렇게 오로지 사교육 폐해에 몰입하여 정부가 쉬운 영어 정책만을 고집한다면 미래의 인재 양성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픙선효과로 사교육의 총액은 줄어들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사교육 폐해 줄이기를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삼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눈 앞의 순간적인 효과만을 위해 실행되면 안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것을 정부가 더 잘 알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을 펴야할 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