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존 그레이(John Gray)가 저술한 ‘화상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는 전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같은 인간이지만 사고와 행동은 차이는 너무나 커서 마치 다른 행성-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에서 온 것 같다는 의미를 가진 제목이었습니다. 남자가 왔다는 화성과 여자가 왔다는 금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유래합니다.
남자가 왔다는 화성 Mars는 그리스신화의 아레스(Ares), 로마신화의 마르스(Mars)를 뜻합니다.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사의 한 부문인 전쟁을 주관하는 군신의 신이자 행동과 결정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또한 공포와 테러의 신으로 닥치는 대로 살육하여 피바다를 이루고, 시체로 산을 만들어 놓곤 해서 동료 신들이나, 심지어 그의 부모조차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를 사랑한 여신이 있었으니 그 여신이 바로 사랑과 미를 주관하는 아프로디테(비너스: Venus, 여자가 왔다는)였습니다. 이 아프로디테는 이미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아내였지만 두 신은 사랑에 빠졌고 에로스를 낳았습니다.
아레스가 은유하고 있는 남성은 전쟁, 행동, 결정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벌이고 그 전과를 자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먼저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남편은 가정 밖 사회에서 전쟁을 치룹니다. 자신의 영역인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영역에서는 자신이 주인이고 그 영역에 속한 사람은 자신으로 인해 모두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남편에게 주어진 가장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존재목적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의 행복은 오로지 자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어 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내가 행복하지 않은 얼굴을 보이면 자신이 외부의 전쟁-사회생활-에서 전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가져다 주면 아내는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좀 더 일찍 들어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지 않냐’고 얘기를 하면 자신의 무능을 아내가 후벼판다고 예단합니다. 아내가 행복하지 않은 원인을 잘 알고, 그것을 개선하고자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화부터 납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야속할 따름입니다. ‘나도 일찍 들어오고 싶다. 근데 이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러는 거냐? 다 당신이랑 가족 때문에 그러는 거 모르면서 그러느냐?’라고 항변합니다. 남편의 이 얘기는 절대 핑계가 아닙니다. 정말로 남편은 그렇게 확신합니다. 자신이 전장에서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영역에 있는 아내, 가족을 위하는 성스러운 전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남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옆집 OOO아빠는 어쩌구 저쩌구… ‘비교를 합니다.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형국이 되고 맙니다. 남편의 존재가치에 의의를 제기하는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역할을, 내 영역의 주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정면 비판인 것으로 받아 들이는거죠. 그것은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짓뭉개버리는 것입니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아내가 자신을 위해 험한 전투에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을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집 남편과의 비교로 모든 것을 부정하고 무참히 짓밟아 버렸던 것입니다. 내 노력에 대한 격려를 기대했던 아내로부터 사회의 낙오자라고 낙인 찍힌 꼴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비난과 배신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제 남편은 집에 돌아오기가 싫습니다. 첫번째는 아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일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밖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다른 하나는 극히 부정적인 반응으로 내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를 해 줄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룸살롱의 아가씨들이 그들입니다. 그 아가씨들이 돈을 보고 그런다는 것을 남편은 잘 압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방에서 남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수가 되고, 옆집의 남편을 형편없게 만드는 최고의 전투자가 됩니다. ‘오빠, 진짜 멋있다. 오빠는 돈도 많이 버나봐. 오빠 같은 사람하고 사는 아내는 정말 부러운 것이 없겠다…’ 남편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는 멘트들에 남편은 위로받고,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가 원하는 남편과는 멀어지게 되는거죠.
룸살롱을 갈 경제적인 여유가 되지 않으면 친구, 후배, 선배를 불러냅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술자리를 갖습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 우리는 아내, 자식들 아무 필요 없다는 모두가 공감하는, 그러나 효과가 없는 얘기를 허공에 대고 외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즈음 군대 얘기를 하게 됩니다. 군대 얘기에서는 모두가 최고로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 전쟁 영웅들입니다. 아무도 확인할 수 없지만 최고로 어려운 고난을 통해 살아 남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낍니다. 전쟁 영웅인 나의 무공담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같은 얘기를 하는 친구, 선후배의 무공담도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전쟁들로 돌아가서 서로에게 시간이 지난 인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야 그나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죠. 술 기운을 빌려서… 그것도 현재로 차용해온 과거의 과대 포장된 영웅담을 통해서…
이렇듯 남자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 인정은 자신의 영역에 속한 존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한 보답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존재들의 행복은 자신이 전쟁에서 취득한 전과물에 따라 좌우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따라서 모든 상황은 결과 중심적으로 파악합니다.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은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얻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논리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로 무장하고 행동을 먼저 해야 결과물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