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연설을 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라고 합니다. 영어실력이 어쨌느니, 발음이 어쨌느니, 왜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말로 연설하지 않느냐 등등.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한글로 연설하지 않고 영어로 했느냐는 다소 정치적인 문제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어실력과 발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갑론을박하는 내용을 보면 영어발음을 실력으로 등치시켜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원고를 읽어내려가는 연설에서 발음 이외에 확인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음으로 실력을 운운하는 것은 일면 타당한 듯 보입니다만 이는 우리 영어학습에서 오래된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발음에 따라 영어실력이 있다 없다의 이분법적으로 보는 병폐 말이죠.
물론 영어발음도 실력을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의 당사자가 원하는 내용을 주고 받느냐가 핵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발음이 어떻든지 원하는 내용이 완벽하게 전달되면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역할은 다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확한 발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북미 원어민의 발음이어야 한다거나, 영국식 발음이어야 한다거나 하는 타협이 안되는 지고의 수준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휘력, 문장구조, 문법, 그리고 그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가 해당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풍부하게 하고 이를 영어로 제대로 전달할 때 영어실력이 좋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에서 생활해 본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소위 ‘원어민 발음’이 아니더라도 훨씬 수준 높은 어휘와 정확한 문장구조, 거기에 해당 이슈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말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누구도 그런 사람에 대해 영어실력이 없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경심을 표할 정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