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다소 괴상한 논리로 정부는 수능의 영어시험을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영어에 대한 사교육비를 줄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최근 영어교육업체 윤선생이 초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 514명을 대상으로 '수능영어 절대평가 도입 후 영어 사교육비 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입니다.
설문에 응답한 학부모의 93.2%는 현재 사교육비용을 유지(82.9%)하거나 오히려 늘릴 계획(10.3%)이라고 답했습니다. "교육비를 줄이겠다"는 학부모는 6.8%에 불과했습니다.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지 않는 이유로는 "영어실력은 수능점수와 상관없이 쌓아야 하는 것"(51.8%)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교육정책이 또 바뀔 수 있어서"(23.4%), "공교육만으로는 영어점수를 잘 받을 수 없어서"(16.7%), "높은 점수를 받아야 수능등급이 잘 나오기 때문에"(7.3%) 등이 차지했습니다.
다만 정부의 영어 절대평가 계획에는 찬성(58.8%)이 반대(25.4%)보다 많았습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찬성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학생간 경쟁구도 해소"(53.6%)와 "아이의 학습부담 경감"(50.7%)이 가장 중요한 답변으로 나왔습니다. 반면 반대 이유로는 "변별력 없어진다"(55.0%), "사교육비 부담이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심해진다"(38.2%) 등이 언급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부가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면서 내세운 취지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앞선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영어교육에 대해 너무 단편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는 글로벌 언어로 단순히 기본적인 대화를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를 제때에 정확하게 획득할 뿐만 아니라 생산하는 것도 필수입니다. 그런데 획득하고 생산해야 할 정보는 대부분 영어입니다. 향후 중국이 대국화가 되면서 중국어 역시 필요할 지 모르지만 영어의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질 것입니다. 그 동안 축적된 생존을 위한 정보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어 사용 인구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 나라 학부모들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윤선생의 설문 조사에도 이런 답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와는 다른 단편적인 관점으로 영어교육에 관한 정책을 접근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사교육비와의 전쟁에만 맞춰져 말이죠.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가르치면서 교육정책은 근시안적으로 내놓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래의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의 가장 근본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순된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비록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현재나 미래의 상황을 감안할 때 그에 순응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학부모들의 생각이 이번 설문 결과에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런 결과를 감안한 정책적인 변화를 기대해 보지만 그 동안의 행태를 보면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영어는 글로벌 환경을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에게 필수적인 언어라는 사실을 우리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정책 수립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책을 입안했음에도 따라가지 않는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학부모들이 몽매하다고 하기 전에 사교육비를 많이 쓴다고 하기 전에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