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나 위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조직이 가진 고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직구조의 편제 때문입니다.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계속되는 의사결정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모두가 동일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물리적 조직적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최선의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리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을 중심으로 위계를 만들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이 위계를 만들게 합니다. 따라서 위계에 따른 질서는 조직의 공적인 업무 중심으로 편제되고 상위 직급에 보임된 사람들이 갖는 권한과 책임은 공적인 업무에서만 행사되어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은 누구나 존중하고 존중받아야할 개인적인 존엄성이 있습니다. 이는 천부적인 것으로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존엄성은 사적인 영역에서 반드시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비록 조직의 일원일 때는 공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개인적인 존엄성은 그 어떤 이유로도 침해되어서는 안됩니다. 공적인 위계가 갖는 상하관계로도 무시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존엄성입니다. 따라서 공적인 업무를 위해 편제된 위계가 주는 권한과 책임의 행사는 철저히 공적인 영역에 국한되어야 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행사되어서는 안됩니다. 공적인 위계 이전에 인간이라는 독립적 주체가 갖는 천부적인 개인의 존엄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공적인 영역에서 상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적인 영역에 자신이 가진 권한을 행사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도 고유의 목적을 가진 조직이고 그 목적을 최상의 모습으로 달성하기 위해 위계질서가 역시 존재합니다. 그런데 학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개인의 인식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상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사 구분없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의 최고 상급자 한 분은 개인 차량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개인 차량을 타느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 본인의 자유이고 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그 어떤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이 퇴근하는 경우 같은 방면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평교사에게 퇴근시 데려다 달라는 요구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이 근무시간 중에 어디를 갈 일이 있는 경우도 태워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고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당해 평교사의 퇴근을 기다리기도 했던 것처럼 있다가 퇴근을 한다고 하면 같이 가자고 요구합니다. 조직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죠.
평교사와 보임을 받은 그 분의 관계는 철저히 공적인 위계의 결과입니다. 퇴근시나 근무시간 중 자신이 어디를 가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왜 힘없는 평교사에게 권한을 행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다른 이유를 들어 거절을 하면 다 들리게 그러나 혼자 말인냥 기분 나쁜 얘기를 합니다. 학교의 공식적인 업무에서는 상급자와 평교사이지만 퇴근시 차를 태우고 말고는 존엄성을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동등한 독립적인 개체의 판단인데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것입니다. 왜 싫다고 거절을 못하냐고? 하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 분에게 이러한 거부가 사적인 영역에서의 거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에 이런 불필요한 그러나 더 힘든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