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퇴근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주말이면 부인과 같이 학교에 나오십니다. 부인도 다른 학교의 선생님이라고 하십니다. 토요일에 학교에 나오면 두 분은 학교 복사기 두 대를 사용하여 무엇인가 열심히 복사를 합니다. 거의 매 주 마다 복사를 하는데 그 분량이 거의 한 박스에 이를 정도입니다. 수업에 관련된 자료거니 생각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본다는 것이 왠지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지도 몰라 그냥 지나쳐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선생님과 그 분의 부인이 복사했던 복사기에 미처 파기하지 않은 몇 장의 종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종교활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일요일 본인들이 다니는 시설에서 사용하는 인쇄물을 토요일 학교에서 매 주 복사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매 주 거의 한 박스에 가까운 분량을 말이죠.
그 누구도 개인의 종교활동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극히 개인적인 자유이니까요. 그런데 개인의 종교활동을 위한 인쇄물을 학교의 용지로 거의 매주 한 박스에 가까운 분량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비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쩌다 한 두 장 정도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복사하는 것까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엄격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의 복사기를 이용하여 거의 매 주 한 박스 분량의 복사지를 소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말이죠.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치지 말아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종교적인 성스러운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위한 과정이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부당하면 안된다는 교훈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종교활동에 열심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그가 종교가 가르치는 엄격한 규율을 솔선수범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당해 종교가 가르치는 규율을 어겨가면서 그 종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어딘지 모순된 행동 같다는 씁쓸함이 배어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