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진지하게 혼인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으면 어느 일방이 상대 배우자에게 더 이상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이혼을 해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등의 주관적인 감정, 의지만으로 이혼할 수 없다는 판결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두 아들을 두고, 시부모와 시동생까지 보살피며 살아왔던 51세의 아내가 동갑내기 남편을 대상으로 신청한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극히 개인적인 생활이라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느 일방이 애정을 갖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결혼생활은 계속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해석됩니다. 결혼은 양 당사자의 의견 합치로 시작되는 만큼 그 마감인 이혼도 양 당사자의 의견 합치가 필요하다는 강제인 것 같습니다.
결혼은 어느 일방의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당사자 쌍방의 의견 일치로 형성되죠. 거기에 더해 모든 모임의 근원이 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지속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죠. 모든 모임의 근원으로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쉽게 형성되었다 쉽게 와해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결정하고 한 번 결정하면 그에 대한 약속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차원을 이론적으로 잘 정리한 사람이 80년재 중반 스턴버그(Sternberg, R. J)입니다. 그는 소위 ‘사랑의 삼각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사랑은 세가지 요소인 ‘친밀감’, ‘열정’, ‘약속/책임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먼저 친밀감이란 사랑하는 관계에서 느끼는 가깝고, 서로 연관이 있고, 서로 맺어져 있다고 느끼는 정서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흔히 사랑할 때 느끼는 따뜻한 감정의 체험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친밀감은 두 사람이 가까워짐에 따라 처음에는 꾸준히 상승하다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점차 줄어들어 한계에 도달하게 되고, 궁극에 가서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아예 친밀감이 존재하지 않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저변에 흐르거나 두 가지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열정은 로맨틱한 감정을 일어나게 하거나, 신체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결합을 이루게 만드는 등의 욕망입니다. 친밀감과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생겨나 금방 뜨겁게 달아 오르지만 얼마 못 가 그 열기는 식어 버리고 이내 익숙해져 습관화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불같이 타올랐던 것처럼 꺼질 때도 빠른 속도로 사그라진다는 이 열정을 많은 사람들은 사랑 그 자체로 믿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열정이 줄어들게 되면 사랑이 식었다고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고 합니다.
약속/책임감에서 약속은 단기적인 측면으로 누구를 사랑하겠다는 것이고, 책임감은 장기적인 측면으로 그 사랑을 계속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대개 약속은 책임감보다 먼저 찾아 옵니다. 사랑하겠다는 의지인 약속이 먼저 다가온 후 그 사랑을 지키겠다는 장기적인 책임감은 뒤에 생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약속과 책임감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랑하겠다는 약속만 있고, 그 사랑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수반하지 않을 때도 있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없이 책임감만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사랑의 가장 이상적인 완성인 결혼은 이 세가지의 존재로 시작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친밀감은 저변으로 숨어들고, 열정은 식게 됩니다. 그러므로 외연으로 드러난 것은 약속과 책임감입니다. 그래서 이 마저 사라지면 결혼생활은 이어지기 어렵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판결에서도 이를 강조한 것 같습니다. 애정이 없는, 즉 열정이 식었더라도 약속과 책임감은 최소한 잔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말이죠.
결혼생활은 장기적인 관계입니다. 친밀감, 열정이 중요하지만 약속과 책임감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을 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순간 결혼생활을 이어주는 요인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 생활이 예전과 달리 열정이 없다고, 친밀함이 드러나지 않다고 결혼생활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기 이전에 나는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