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와 관련하여 최근 새로운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집단 괴롭힘, 소위 왕따를 당한 피해 학생이 자살했다고 하더라도 괴롭힘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해 담당 교사나 학교가 자살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면 학교에 보호감독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판결입니다.
2009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왕따를 당한 학생의 자살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로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한 피해 학생이 학교측에 책임을 물으려면 학교나 교사가 이를 객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자살한 학생의 경우 친구들로부터의 괴롭힘 정도가 빈번하지는 않았고,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이나 비난 정도였던 점 등을 볼 때 담임교사가 자살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판결에 의하면 사고 당시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가출한 뒤 학교에 오지 않고 방황하다 자신의 집에서 자살한 점 등을 고려하면 담임교사와 학교가 이를 예견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이 판결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판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을 관리 지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듭니다.
학생들 사이의 일어나는 관계를 학교나 교사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학생들의 인격적 지도에 적지 않은 제약이 있습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 지도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훈계를 원하지 않습니다. 학생 역시 이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반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생들 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학교나 교사가 학생들의 인격적 도야를 위한 개별적 훈육에 부담을 갖거나 거부감을 갖고 자주 이를 표출합니다. 학교는 다만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지적•정서적•신체적•사회적으로 조화롭고 균형잡힌 전일체로서의 인간을 육성하려는, 소위 전인교육을 바라지도 행해지지도 않는 현실에서 학생간의 역학관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학생간에 발생하는 괴롭힘의 주고 받음을 헤아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괴롭힘을 주고 받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사건 발생 후 책임 소재에 관한 문제 이전에 학교생활은 성숙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특정인이 가진 나와 다른 성향이나 특질을 이유로 집단적으로 배척을 하는 비민주적인 행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험을 배우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민주적인 사회는 다양성을 가진 사회여야 하고 그 내용을 학교생활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은 이후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도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생활이 어떤 곳인가, 선생님은 어떤 존재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가, 나와 다른 특질을 가진 친구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누군가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면 어떤 절차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가,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누구와 상의하는가 등에 대한 가르침은 학교 이전 가정에서 알려주고 가르쳐야 할 내용들입니다. 학교와 선생님, 학교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 등은 학교생활의 전제로서 가정에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절대량은 물론 영향도의 크기가 가정에 더 크기도 하거니와 학교생활을 하기 위한 전제들인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괴롭힘을 주고 받는 부당한 관계는 단지 학교에만 그 책임을 돌리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러한 일단의 판단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교가 책임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는 판결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에서 아무런 주의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을 주는 것 역시 아닙니다. 주요한 사안인 만큼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주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괴롭힘을 주고 받는 관계는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별이 불가합니다. 지금은 가해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이후 정상적인 성숙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면 그 또한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그 어떤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노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