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 전국 결혼•출산 동향 조사' 보고서에서 아들과 딸의 결혼 비용에 대한 흥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2010부터 2012년에 결혼한 973건의 결혼 비용을 조사해 보았더니 아들을 장가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 딸을 시집보내는데 드는 비용보다 3배 많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결혼 비용은 평균 1억735만원인데 딸의 결혼 비용은 3,54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부담스러운 항목을 들여다 보면 신랑 측은 '신혼 주택 비용'(81.8%)을 가장 많이 꼽은 반면 신부 측은 '신혼 살림'(44.8%)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합니다. 신혼 주택 마련은 신랑 측에서 신혼살림은 신부 측에서 해 왔던 일반적인 관행을 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할 만한 한 가지 통계가 더 발표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출한 아들 혹은 딸의 결혼 비용 중에서 당사자인 아들이나 딸이 부담한 비율입니다. 결혼 당사자인 아들이 직접 부담한 비용은 3,497만원으로 결혼 비용의 32.6%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딸이 직접 부담한 비용은 1,624만원으로 결혼 비용의 45.9%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금액으로 보면 딸의 본인 부담 비용은 아들이 부담한 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스런 자녀가 결혼하는데 부모로서 당연히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에 따라 자녀가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잡느냐가 결정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결혼 비용을 부모가 부담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할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무엇보다 아직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노후생활에 대한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과연 자식의 결혼에 부모가 부담을 해야하나라는 의문이 듭니다.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출금을 안고 있는 부동산이 노후생활을 위한 거의 유일한 자산입니다. 일생을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사교육을 시키고,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하여 별도의 자산을 챙겨둘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결혼한다고 해서 빚을 내고, 집을 줄이고, 그나마 얼마 있는 자산을 내놓습니다. 아마 자식에게 잘 하면 자신들의 노후는 자식이 잘 보살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부담을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의 노후보다는 자신들의 영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독립심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자식의 모든 일에 부모가 관여하고 결정하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물론 취업에서도 부모가 정보를 취합하고 방향을 선택하고, 면접 장소에 따라오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회사를 다니는 도중에도 근무평가의 결과에 대해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고 회사 동료간의 인간관계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성인이 되면 자신의 생활은 자신 스스로 개척하도록 독립을 시킵니다. 세상은 자신이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하고 결정을 대신하니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렸어도 여전히 의존적인 자녀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의 결혼비용 부담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투자에 대한 보상 심리입니다. 평생을 자녀를 위해 뒷바라지 하고, 특히 결혼에서도 부모가 대부분의 비용을 지불하였으니 이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동하게 됩니다.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간섭하고 결정하려는 것이죠. 이혼한 부부의 이혼 사유 중 적지 않은 사유가 당사자가 아닌 부모들의 지나친 간섭과 결정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먼저 경험했던 삶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조언과 충고의 정도가 결혼 비용 부담 정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결혼에 비용을 부담하였다면 조언과 충고는 커지게 됩니다. 마치 기업의 주주와 같은 역할과 같다고 할까요. 지분이 있는데 말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자녀의 입장이 아닌 입장으로서 말이죠.
성장기의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러한 얘기는 먼나라 얘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장기 동안에 이와 같은 내용을 명확히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까지 부모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자녀가 독립적인 주체로 스스로의 생활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지 등을 미리 미리 확인하고 조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다 해주던 부모가 어느 날 태도를 바꾼다면 자식은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