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이래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어요. 유재석, 강호동 중 하나는 있어야 하고, 웃기는 사람, 즐거운 사람, 잘생긴 사람, 그러니 4~5명으로 구성되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해온 거죠.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해요. 저는 그 예능의 기본을 깨야 했어요.”
“뭐 얼마나 대단한 예술작품을 한다고 사람 무시하면서까지 하나요. 조연출 4명이 15분씩 편집해서 60분짜릴 만드는데, 누구 부분은 재미있고 누구는 재미가 없을 수 있죠. 그러면 당연히 재미없는 부분을 자르는데, 둘째 주에 방송이 적게 나간 조연출이 또 재미없는 부분을 맡게 됐다 쳐요. 그래서 제가 그걸 또 잘라내면, 그 친구는 ‘아,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인가, 저 사람은 날 인정해주지 않는구나’ 생각할 거예요. 나사 하나가 살짝 헐거워지는 건데 그렇게 생긴 작은 균열이 프로그램 전체를 잡아먹을 수 있죠. 그래서 그 친구가 편집한 재미없는 부분도 방송에 내보내죠.”
“정당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면 되죠. 70~80명의 스태프가 거기 있는 이유는 각자 하나하나 소중한 역할이 있어서니까. 예를 들어 배차 담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일이 사실 도드라지진 않지만 잘 안되면 욕은 욕대로 무지하게 먹는 자리죠. 그 친구한테 권한을 주고 ‘네가 책임을 지고 해줘’ 맡기고 ‘고맙다, 수고했다, 너니까 했다’ 이런 얘길 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다죠. 그렇게만 해도 ‘아, 피디님한테 칭찬받았어’가 아니라 ‘나도 이 프로그램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어’가 되는 거죠. 그런 주인의식을 갖는 게 진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런 사소한 차이가 100%를 채운다고 믿습니다.”
<삼시세끼>로 대박을 터뜨린 나영석 PD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답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사실 그의 <삼시세끼>는 대박 프로그램의 공식과 달리 단순합니다. 아이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최고 전성기의 연예인도 없습니다. 많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달랑 세 명에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전부입니다. 배경도 소소합니다. 엄청난 제작비로 꾸민 스튜디오가 없습니다. 막대한 경비를 들여 찾은 화려한 외국도 아닙니다. 목포에서 배로 여섯 시간이나 가야 나오는 조그만 섬의 초라한 오두막입니다. 소재 역시 심심합니다. 불륜을 베이스로 하는 막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슴을 졸이게 하는 극적 긴장감도 주지 않습니. 많은 연예인들이 짓까불고 떠드는 작위적인 요란함도 없습니다. 도시적인 기준의 엔터테인먼트 여건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료한 환경에서 그냥 세끼 밥만 지어먹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좋아하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외피적인 관점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영석식 성공요인을 분석합니다.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그것도 자원과 여건에서 골리앗인 공중파를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하고 있는 요인을 찾으려 애쓰는거죠. 어디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까? 어떻게 무료한 내용을 재미있게 만들까? 어떻게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까? 무엇이 연이은 대박으로 이끌고 있을까? 등 등…
그리고 마침내 다각도의 분석 끝에 하나의 궁극적인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만든 창의적인 프로그램도, 무료한 상황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묘약도, 한정된 자원으로도 창조해내는 놀라운 성과도, 많은 인원들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게 만드는 응집력도 결국 하나의 근본에서 시작되고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나PD가 잘 나가던 KBS를 사직한 것도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살인적인 스케줄이 5년간 이어지면서 같이 일하던 조연출들이 디스크와 스트레스성 장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작가들도 아이디어 고갈로 나날이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학대한다는 생각이 들어 사직을 결심한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환경, 한정된 자원, 소수의 연예인 그리고 무료한 일상으로 가장 ‘핫’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배경도 사람이었습다. 하루하루 바쁘고 힘든 도시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삼시세끼>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대박 프로그램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선 그의 답에서처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스태프가 중죄를 지지 않는 이상 함께 합니다. 사람은 모두 능력의 차이가 있고, 이는 확률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의 차이를 받아들인 뒤 모자란 부분을 가르치면 모두가 제 역할을 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결과로 그는 소위 나영석 사단이라고 불리는 신뢰로 똘똘 뭉친 전문가들과 팀을 이루어 매 작품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 팀과 성공의 정점에 그가 있지만 그는 항상 얘기합니다, 자신의 성공은 다 그들 때문이라고.
분명 창의성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창의성이 모든 조직의 가장 큰 경쟁우위 요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경제주체(가계, 기업, 국가)가 창의로 호들갑을 떱니다.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학습과정을 찾아 우리 아이를 끼워 넣습니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학습방법에 기꺼이 비싼 비용을 지불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 최고운영자가 나서서 창의와 창조를 외칩니다. 무엇이 창의고 창조인지, 어떤 실증적인 방법론이 우리 경제 실정에 맞는지 구체적인 제시 없이 그저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부처들이 창의나 창조와 관련된 구호로 도배는 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한 술 더 뜹니다. 기존의 전략, 지식, 기술, 관행 등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도태라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할 때 창의력 높은 사람을 찾는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직원들에게도 닦달합니다. 창의력을 키우라고, 머리를 쓰라고…
그런데 이런 방법이 과연 우리 아이의, 우리 공무원의, 우리 직원의 창의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창의력을 높인다는 학습과정을 듣는다고, 머리를 쓴다고, 지적 수준을 높인다고 극명하게 차별화된 경쟁우위 요소로서의 창의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나영석 PD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관찰이 창의성의 요체라고. 그의 성공은 얘기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애정 어린 시각으로 관찰하여 우리가 잊고 있던 정서를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보편적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고. 그것이 창의이고 그것이 경쟁우위 요소라고.
마지막 질문으로 이 글을 맺어보려 합니다. 창의성은 머리에서 나올까요? 가슴에서 나올까요?
멍청한 질문으로 생각하지 말고 답을 한 번 해보십시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머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임금의 가장 창의적인 발명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머리에서 나왔는지 가슴에서 나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창의적인 제품들은 가슴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가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