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알리 호흐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 1940~)’라는 미국의 사회학자가 최초로 감정노동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좋아하고, 싫어하고, 슬프고, 화나는 매우 사적인 감정이 조직 속에서는 집단적 감정으로 변형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집단적 감정은 조직 속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개인들에게 강요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담당하는 업무가 요구하는 감정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는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면 이를 ‘감정노동’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보통 항공사 승무원, 텔레마케터, 백화점 점원, 레스토랑의 서버, 간호사 등이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예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교사도 감정 노동자에 속한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학생이나 학부모를 소비자로 하는 서비스라는 사고가 그 바탕이 됩니다. 교육부의 정책 기조가 서비스업 차원에서 입안되고 집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인 교원능력평가를 포함해서 교사가 얼마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느냐를 교육 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과 부모를 수요자로 보고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과 부모가 기대하는 가치와 학교에서의 교육으로 제공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전달하는 서비스는 교육입니다. 교육은 미래 사회의 성숙한 사회인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예지와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대전제를 기초로 합니다.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성숙한 주체를 만들기 위한 과정인거죠.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생과 부모가 학교로부터 기대하는 가치는 다른 것 같습니다. 당장 현재 시점에서의 내 자녀 ‘개인’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최고의 가치로 기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것 보다, 미래에 어떤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될 것인가 보다, 인성의 함양 보다 당장의 개인적 안위를 우선하고 그것을 학교가 주는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발생할 경우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내 자녀의 태도와 행동에 대한 사실적 판단은 배제하고, 그러한 사고가 다른 관련된 주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감안하지 않고, 학교 교육의 근본 추구 가치는 묵살하는 학생과 부모가 적지 않습니다.
거기에 학교의 주요 보직 선생님들이 교육 본질에 대한 일관성 있는 가르침과 주장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주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감정에는 관심을 보이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교사가 가진 교육의 본질에 근거한 감정은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의 감정은 학생과 학부모의 감정에 묻히는 것이죠. 바로 감정노동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시대의 흐름이니 반드시 따라야 하고, 따라서 스트레스에 강해야 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역할의 상충과 갈등 상황을 수용하라고 재촉한다면 이 역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사가 감정노동자가 될수록 학생들과의 교감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도 교육이 갖는 본질은 살아 있어야 하는데 교사로 하여금 감정노동자로 정의하는 시대가 된다면 그 본질은 흐트러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결국 학생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야 할 미래가 달라지게 될 것이고 그 피해는 원하지 않지만 학생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더불어 살면 덜할 Cost를 그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