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랄 때부터 친구이지만 어떤 사회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집니다. 자랄 때부터 친구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서먹함이 없이 금방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대화의 소재가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친구와의 친밀감의 정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학창시절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전화상으로는 자주 보고 살자고 서로들 얘기하지만 다들 사는 것이 바빠 생각만큼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들입니다. 걔 중에는 비교적 자주 보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한 친구의 노력으로 그리고 다들 큰 맘 먹고 일상을 떨쳐내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라는 끈끈함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여성이 갖는 공감력 때문인지 시간적인 간극에도 불구하고 금방 반가운 수다를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보지 못했던 그 동안 각자의 소소한 일상이 대화의 첫 번째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대화의 소재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소재에 따라 모임이 몇 개의 소집단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주부인 친구들은 그들대로, 특정 직종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그들대로 각각이 갖는 고민들과 관심사에 집중하였던거죠.
학교 선생님은 혼자였으나 처음 얼마간은 친구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소재로 대화에 참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 소재는 시들해지게 되고 화제는 다른 것들로 전환되었습니다. 아파트의 크기, 남편의 직책, 다른 친구들과의 소일 등으로 말이죠. 이러한 것들은 모든 사람의 삶의 일부분으로 누구나 할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의 정도에 따라 대화에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아파트의 크기, 남편의 직책, 친구들과의 소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큰 맘 먹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이러한 소재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산적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른 친구들과 간다는 사우나, 노래방, 맛집이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당해 주제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지 않아서도 그렇겠지만 이런 대화를 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혼자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러한 소비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허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녀들에게는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라고 다그치는 연령대의 우리가 이렇게 소비적인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이중적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대화들이 소비적인 내용인 것도 그렇지만 몰입 수준에서 대화하는 소비적인 소재들이 결코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에서 자녀에게는 생산적인 생활을 독촉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소비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그 일상이 지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주된 대화의 소재로 활성화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본 것입니다.
친구끼리 반드시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만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일상의 연장들이 대화의 소재가 된다면 그래서 그 소재가 소비위주적인 것이라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러한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학창시절 친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친구의 친밀함이, 격의없음이, 선한 의도가 친구로 하여금 기분 나쁨이 없이 좀 더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할 수 있을 거라는거죠.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오랜만에 만난 학창시절 친구들의 대화이자 수다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럴 때 친구 사이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