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X발, X나 짜증나. 또 싸움이야. 벌써 이번 달에만 네 번째야. 저럴 거면 이혼하든가…’
우리 반 한 명의 학생이 자신의 SNS에 올린 내용입니다. 부모의 부부싸움을 보고 화가 나서 올린 내용으로 보입니다. 이 글에 그 학생의 여러 친구들이 때론 격려, 때론 공감의 댓글을 올렸습니다. SNS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정제없이 올리고 그 곳에서 소통하는 요즈음 학생들의 생활의 한 단면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사에게도 잘 말하지 않는 학생들의 생활상을 파악하기 위해 자주 그들의 SNS에 들어가 봅니다. 자신들의 감정을 정제없이 올리고 그 곳에서 소통하는 요즈음 학생들의 면면을 볼 수 있어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SNS의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내용들의 글보다는 부정적이고 때론 격앙된 글들이 자주 올라옵니다. 학생으로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쉽지 않은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누군가와 의논하고 공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현실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욕설을 포함한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로 표현하고 그것에 서로가 맞장구를 치는 내용들을 보면 이런 식의 표현과 교감이 상처에 근본적인 치유가 될까 의문이 듭니다. 해결은 되지 않고 노골적인 감정만 배설함으로써 오히려 정신적인 피폐는 가져오지 않을까 고민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사라고 해도 그들만의 세상에 함부로 들어가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관찰자로서의 역할만 허락될 따름입니다. 그들이 아닌 누군가의 개입과 간섭이 들어가는 순간 그마저도 문을 닫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SNS의 글들은 대부분 현실에서의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올리는 글들입니다. 그래서 격앙되고 폭력적인 글들이 대다수입니다. 자주 보다 보면 그 표현들에 무뎌지고 있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 한 욕설과 최악의 단어들로 구성된 글들 중에서도 이 부모의 부부싸움에 대한 글이 눈길을 잡아 끕니다. 그것은 학생으로서 자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인 부모에 대한 심각한 불만과 걱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혼돈의 학생시절, 가장 가깝게 자신의 우산이 되어주어야 할 대상은 부모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평지풍파에도 균형잡힌 생활을 하게 만드는 가장 우선적인 존재가 부모인거죠. 따라서 부모에게 기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느낌은 평안입니다. 혼돈 그 자체인 시절, 가장 가까이서 안정감을 잡아주는 주체로서 부모를 원하는 거죠. 그것이 혼돈기 학생이 부모에게 바라는 일차적인 기대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자주 싸움을 합니다. 자녀인 학생 앞에서 말이죠. 물론 부부싸움 자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부부간의 갈등은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른 다툼 역시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다툼이 부부 양 당사자간의 관계에서만 존재해야 하고 자녀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시기, 부모가 자신들의 불화를 자녀에게 적나라하게 보이면 더한 혼돈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응당 평안을 주는 존재로 이해하는 부모에게서 그와 정반대의 현실을 접하게 되면 다른 누군가로부터 갖게 되는 것보다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평안을 주는 존재로서의 강한 믿음이 증오와 분노로 전환된다는 것이죠 이 학생이 ‘저럴 거면 이혼하든가..’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죠.
적어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부모 자식관계는 부부관계에 우선합니다. 부부가 갖는 갈등에 우선하여 자녀에게 평안함을 제공하는 존재로서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부간의 갈등을 제로(zero)화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다만, 부부간의 갈등이 있어도 그 갈등을 자녀에게 확장해서 내보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세상에서 평안을 주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는 존재가 불화를 보이고 갈등을 드러낸다면 자녀는 누구에게서 평안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