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법을 개정한다고 합니다. 급속한 고령화를 감안한 조치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속법이 개정된 것은 1990년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적용되는 이 법에 의하면 배우자가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과 함께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 존ㆍ비속의 상속분보다 50%를 더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망한 남편이 배우자와 자녀 1명을 남겼다면 상속 재산은 배우자에게 1.5를, 그리고 자녀 1명에게는 1의 비율이었습니다. 만약 자녀가 2명이라면 배우자가 1.5, 자녀 각각이 1이 되어 배우자에게 상속되는 절대금액은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법무부가 개정하려고 하는 상속법은 배우자에게 50%를 먼저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50%의 선취분을 제외한 나머지 50%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50%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배우자에 대한 상속 몫을 늘리는 대신 자녀 몫을 줄이는 취지는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개정의 취지는 배우자의 사망으로 남아있는 다른 배우자의 생활에 대한 안정성 배려라고 합니다. 한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자식들은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생활하는 반면 경제 능력이 부족한 생존 배우자는 생계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배경입니다.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제력이 부족한 나이 든 배우자를 젊은 자녀보다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녀의 부모 부양의식이 퇴조되고 있는 것도 감안되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죠.
이러한 방향의 상속법 개정에 대해 찬반 의견이 나뉩니다. 찬성을 하거나 반대를 하거나 각각 그에 대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의견이 완전히 맞고 어떤 의견이 완전히 틀리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왜 이런 방향으로 법개정이 검토되는지에 대한 추세는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위한 절대 희생이었습니다. 부모의 절대 희생에는 자녀의 삶이 부모의 그것보다 나아야 한다는 바람이 근본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렇게 성장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한다는 기대와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최초로 만들어진 1960년의 상속법을 보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상속법은 호주를 승계한 장남이 유산의 50%를 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남이 부모는 물론 나머지 형제들에 대한 양육을 책임지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이러한 전통은 사라져 왔습니다. 여전히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일생을 희생하고 있지만 그 반대급부적인 자녀의 부모 부양 의식은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법은 시대의 반영이니만큼 이번 개정안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모의 자녀를 위한 희생은 여전한데 자녀의 부모의 부양의식은 사라질까요?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더 높아지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근본원인은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본질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 부모의 자녀교육의 핵심은 인성이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성숙한 존재를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더불어 사는 사회의 시작이 가정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그 어떤 교육보다 우선적으로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작금 부모가 하는 자녀 교육에 대한 핵심은 이런 인성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성공을 위한 조건 쌓기가 절대우선입니다. 학교에 대해서도 인성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부모가 자녀의 인성에 집중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에 진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성장을 해도 더불어 사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자신들의 책임에 부모의 부양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만큼 연로해진 부모가 경제 활동을 할 수가 없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도 이를 생활의 중심축으로 가져오지 않습니다. 거리를 두고 회피하고 심지어 연락을 끊기도 합니다.
이런 풍조에도 불구하고 수명은 점차 늘어나니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적인 법이 나서 개인들의 삶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이 문화로 도덕으로 살아 움직인다면 굳이 상속법을 개정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이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거죠.
아무튼 상속법 개정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개정의 방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반영되는 시대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상을 초래한 것에서 우리 부모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