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무렵 한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자녀와 함께 모든 가족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학교 근태에는 체험학습으로 처리를 해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체험학습으로 처리합니다. 교실에서만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의 여행은 가족과의 친밀함을 바탕으로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로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충분한 학습의 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시기가 학사일정의 중요한 사안과 중복되지 않는다면 가능한 허락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요청한 여행 일정에 영어 듣기 평가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평가 중에서도 개인이 따로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가급적 체험학습을 존중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 말하기 평가와 같은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같은 시간에 평가를 받아야 되나 개별적으로 해도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면 체험학습 전후에 별도로 평가 받게 하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듣기 평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의 규칙에도 이를 명확히 규정해두고 있고, 이 명시된 내용은 매 학년 각 가정에 통지문으로 고지해 드립니다.
이 어머니에게도 이미 가정 통지문으로 안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체험학습을 요청 시 이를 명확히 하고자 영어 듣기 평가와 일정이 중복됨을 알려 드렸습니다. 더불어 만약 해당일에 평가를 받지 못하면 받게 될 불이익도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이미 여행 예약을 했기 때문에 취소하면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듣기 평가 불참에 대한 불이익은 감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학생이 상급학교에 지원하면서 벌어졌습니다. 외고를 지원한 것입니다. 경쟁률이 높은 외고 지원 과정에서 작은 점수도 당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상황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학교를 방문하여 항의를 하였습니다. 학교의 규칙도 가정 통지문으로 고지를 하였고, 본인이 체험학습을 요청했을 때 그 불이익을 명확히 알려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금전적인 피해를 결정의 우선순위로 감안하여 충분히 알았다고 했지만 다른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런 규칙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 내용을 고지 받았는지 기억이 없다’, ‘체험학습 때 불이익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다’ 등등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교장 나와라’, ‘교감 나와라’ 등의 고성으로 볼쌍 사나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학교 규칙과 가정 통지문을 제시하고, 체험학습 때의 상황을 포함한 대화 내용을 얘기하고, 동일한 사안에 대한 이전 학교의 조처를 얘기하자 ‘그래도 우리 애는 한 번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다짜고짜 주장하였습니다. 장시간 동안 계속된 그 어머니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은 교무실의 많은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주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자녀의 이익을 위한다면 상식이나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도 우기고, 고지했던 내용도 부정하고, 나누었던 대화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행태가 교육현장에서 사라질까요? 정해진 규정이나 규칙도 내 자녀의 이익을 위해서는 예외로 해달라는 이기주는 또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그래서 그러한 편법이 통해 자녀를 원하는 학교에 보내고, 더 나아가 원하는 성공으로 이끈다면 과정은 무시된 결과에 만족하고 떳떳할까요? 그 과정에서 자녀는 무엇을 배울까요?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참된 교육일까요? 그리고 그러한 부모와 함께하는 여행을 교육의 한 형태로 인정하여 체험학습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