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뜻 깊은 시간입니다. 학생으로서는 3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학업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의 한편으로 교분을 쌓았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학부모로서는 학업을 마친 자녀에 대한 대견함과 함께 향후 맞게 될 더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야 할 자녀에 대한 걱정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서는 그 동안 성장한 제자들의 변화와 그 변화를 함께 해 온 시간들의 반추와 더불어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의 감정이 몰려오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서 졸업이 주는 의미와 느낌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하나의 의식 속에서 교감하고 이해하고 종국에는 추억으로 보듬는 시간이 졸업식입니다.
이제껏 졸업식은 대부분 엄숙함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것이 과거의 잔영인지, 의식이면 가져야 할 당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항상 엄숙함을 기조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숙하게 진행되는 졸업식에는 한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날의 주인공인 학생의 주체적인 참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민의례를 하고, 졸업의 송사와 답사를 하고, 시상을 하고, 졸업장을 수여하는 등의 순서에서 학생은 늘 객체적인 방관자 혹은 소극적인 관찰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의례를 통해서도 무엇인가를 주체적으로 배워야 하는 학생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학생들의 기대 역시 감안되지 않고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번 졸업식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약점을 보완하는 흐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방관자가 되는 시간은 줄이고 그들이 즐겁게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자신들이 꾸미고, 자신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에게 보이는 졸업식이 되었던거죠 시간은 조금 늘어났지만 자신들이 참여해서 그랬는지 주인공인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활발한 색다른 졸업식이 막 끝났던 때였습니다. 갑자기 학부모 한 분이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교무부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더니 욕설을 동반한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성으로 여러 얘기를 했지만 핵심은 ‘내가 이런 학생들의 공연을 보러 졸업식에 온 줄 아느냐?’, ‘졸업식이 무슨 장난이냐?’는 불만이었습니다. 왜 그러시냐는 질문에도 막무가내로 격렬하게 화를 내었습니다. 많은 학생은 물론 거의 모든 선생님들과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학부모들도 있는 자리였지만 안중에 없는 듯 보였습니다.
졸업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드백을 할 수는 있습니다. 차후 동일 혹은 유사한 의식을 진행할 때 금번 자신이 느꼈던 불만을 반영하라는 피드백 말이죠 그런데 피드백은 그렇게 욕설을 하고 소란을 피워야만 주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의사표시만 충분히 하면 될 것입니다. 자제되지 않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더라도 피드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학부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그 분이 만든 상황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그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졸업이 아니라 여전히 학교를 다녀도 그런 도에 넘치는 행동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졸업이니 더 이상 학교나 선생님, 하물며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학부모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화를 내면서 ‘이런 졸업식을 보려고 내가 온 줄 아느냐?’라는 자신의 불만을 차용하면 ‘다른 많은 학생들,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은 그분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려고 졸업식에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원하지 않는 졸업식에 화를 내면서 그 자신이 연출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장면에 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는 왜 감안하지 않는 것일까요?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은 아닐까요? 셋째는 졸업식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오해는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졸업식은 몇몇 이해관계자가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생이 그 주인공입니다. 설혹 다른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진한 부분이 있어도 졸업식의 주인공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그 내용에 대해 만족하였다면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부모도 분명 졸업식의 이해관계자이긴 하지만 학생들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학부모의 자녀는 그 광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자랑스러워할까요? 그러한 모습을 보고 불만이 있으면 상황이나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기분만 배설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을까요?
3년 동안 자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기대하기는 한 것일까요? 다시는 안볼 것 같으면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일까요? 성취감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학교생활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많은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들과 그리고 선생님들 앞에서 보여준 행동이 자녀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