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년의 개학 첫날 담임으로 조회를 하였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실내화를 착용하고 등교를 했는데 단 한 학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내화 착용은 교칙이라는 것을 학생들은 잘 압니다. 그래서 모두들 개학 첫날임에도 실내화를 착용하고 온 것입니다. 실내화를 착용하지 않은 학생은 전 년도에 수업을 하지 않은 학생으로 잘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아직 성향도 모르고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 몰라 실내화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잘못을 지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따로 불러 여분으로 있던 실내화를 그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하루 그 실내화를 착용하라고 말이죠.
두어 켤레의 실내화를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 어쩌다 깜박한 학생에게 빌려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이지만 말이죠. 이렇게 실내화를 빌려주면 학생들은 하교할 때에 그 실내화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자신들의 실내화를 착용하고 등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학 첫날 실내화를 착용하지 않아 여분의 실내화를 빌려 주었던 그 학생은 하교 때 그 실내화를 반납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새학년이라 그 학생의 성향을 잘 몰랐지만 개학 첫날 모든 학생들과 달리 실내화를 착용하지 않았고, 빌려준 실내화를 반납하지 않고 하교 하였다는 사실에 그 학생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자신이 하루 동안 빌려 신었던 실내화를 깨끗하게 빨아서 반납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전에도 실내화를 학생들에게 빌려주었던 적은 있지만 이 학생처럼 실내화를 빨아서 반납한 학생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순간 어제 하교 이후 그 학생을 좋지 않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일찍 사람을 예단해 버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룻동안 빌려 사용한 실내화를 깨끗하게 빨아 반납한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깊은 마음씨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인데 그런 내용도 모르고 미리 단정해 버렸으니까요.
그 학생에게는 사실대로 얘기를 하였습니다. ‘어제 실내화를 반납하지 않고 하교를 해서 선생님은 너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했는데 너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네 마음씨가 매우 곱고 착해서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종례시간에 다른 학생들에게 알렸습니다. ‘OOO이가 실내화를 하루 빌려 사용하였는데 깨끗하게 빨아서 반납했다’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준 것’이라고. ‘OOO과 같은 학생들을 기대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신었던 실내화를 빨아서 반납한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보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들을 하는 학부모 역시 무수히 많이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실내화를 집으로 가져간 학생과 그 실내화를 빨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그 학생의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도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가 하지 않는다면 그 당연함을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는 당연함에 대해 감동을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