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을 경험했던 우리민족입니다. 어지간한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크게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감내를 하고, 그에 따른 여파도 수긍하거나 수용해왔습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높은 심적 탄력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왠만한 사고 사건에도 무감각 혹은 무신경으로 스치듯 지나쳐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도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충격도 잘 완충해 주던 심적 탄력성이 전혀 기능할 수 없을 정도의 비극을 맞게 된 것입니다. 물론 긴 역사 동안 사고 규모나 인적 피해 수 등 절대적인 수치로 보면 이에 버금가는, 아니 이보다 더 비극적인 사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감안하면 이처럼 비통한 적은 없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 체계적인 시스템, 잘 갖춰진 안전망, 고양된 안전의식, 짜임새 있(다고 주장하)는 구조체계,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IT 기술, 그에 따른 빠른 통신망, 거기에 안전을 정책의 가장 우선순위로 정해 부처의 이름도 안전행정부로 개명한 정부의 의지 등 모든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사고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3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수의 승객이 사망 혹은 실종되는 사고의 개연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그 제로에 가까운 개연성을 깨고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꽃도 펴보지 못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250여명이 희생되면서 말이죠.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함이 납덩이로 가슴을 짓누릅니다. 슬픔도 슬픔이지만 안타까움과 더불어 분노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미안한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희생된 것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커다란 슬픔을 느낍니다. 충분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임에도 그렇지 못했던 상황으로,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그들을 내몬 상황이 안타까움을 줍니다. 물리적 기술적 시간적 인적 그리고 다른 모든 환경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들을 구할 수 있었고, 그래야 했음에도 그렇지 못한 관련자들의 무책임과 무능에 분노가 분출됩니다. 그리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저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순종적인 행동을 보였던 죄없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합니다.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일으킨다고 자위하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개개인이 하는 작은 기도와 염원도 모이면 커다란 기적을 가져온다고 비통 속에서도 서로 격려합니다. 당연한 믿음에 의한 발로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사지로 몰린 어린 학생들에 대한 한없는 죄스러움이 우리를 가만히 있게 만들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그들이 받았을 엄청난 고통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는거죠. 우리와 같은 일상으로 꼭 돌아오라는 간절한 기도와 염원이라도 해야 합니다. 기적은 확률이 적을 때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많은 이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디 작은 생명들이 우리들이 보내는 기도와 염원을 기적으로 만들어 되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